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독의 결단(함대 컬렉션) (문단 편집) === 라바울 1943 === 6개월간의 치열했던 철저해협의 전투가 끝나자 양 진영은 잠시 함대를 물리고 휴식기에 들어간다. 과달카날에서 겨우 철수한 일본 육군 병력들은 완전히 피골이 상접한 거지꼴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해군의 칸무스들은 숙소에서 미국이 뿌린 선전물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의 적 간무수다!'라고 씌여있고 칸무스를 귀크고 뻐드렁니 나온 옐로 몽키로 묘사한 것을 보고 이게 누구가 모티브냐고 놀려먹다가 전사한 후부키라는걸 알게 되자 경악한다. 선전책자에는 일본군이 항복한 미군 파일럿을 참수하는 사진도 실려있었고 카게로가 설마 우리 군대가 이런 짓거리까지 해먹었겠냐며 반신반의하고 그 다음 장에는 키사라기의 해골이 한 미국 여인의 필통꽂이가 되어있는 사진을 보자 역겨움을 감추지 못하고 텐류가 굉침하여 타츠타는 매일같이 유골함 앞에서 흐느끼는 와중에 유키카제와 토키츠카제는 이제 전쟁이 언제쯤 끝날까 걱정한다. 1942년 말, 독일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했지만, 일본 제국은 아직 그간의 전투에도 불구하고 점령 판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발동한 미국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일본의 수송선 230척 백만여톤을 격침시켰지만,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이 전과가 독일 [[유보트]]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고 평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통상파괴에 나설 것을 요구했고, 기존의 불량률이 높던 근접신관을 구형이지만 그나마 신뢰성있는 충격신관으로 바꾸도록 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되었을때부터 자국 경제를 전시체제로 전환하였으며, 정부는 군수공장을 만든 뒤, 이를 전시체제가 끝날 때까지 민간에 연간 1$에 대여하였다. 또한 산업을 군수산업으로 전환하는데 세금 혜택을 제공하고, 일본이 영국/네덜란드령 동남아시아 식민지를 점령하여 천연고무 유통을 장악하자 석유를 이용한 인조합성고무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민간에 불하된 군수공장에는 대규모 무기 생산주문이 이어졌으며, 민간 물자는 일부 제한되었다. 전쟁이 일어난 이상 탄약을 사지 않는 연합군 열강은 없다시피 했으며, 모든 미국의 민간 공장들도 전시물자 생산에 주력했다. 미군의 규모가 계속 늘어나며 대공황으로 인해 해고된 노동자들이 복직되자 미국은 대공황의 후폭풍을 해결하고 '민주주의의 조병창'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시경제로 만들어진 생산시설들은 전후 민간 산업으로 되돌릴 수 있었으며 전쟁으로 인해 초토화된 유럽을 대신하여 전세계 GDP의 60%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각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